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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부산 영화숙 재생원의 참상과 무기수의 고백

본방노트 2026. 10. 25. 11:00

다큐·교양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방송 후 공개 자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고발한 부산 영화숙 재생원은 어떤 곳이었나요?

영화숙 재생원은 과거 부산시가 부랑인을 위탁 수용했던 시설로, 국가 지원금을 노린 원장의 납치와 강제 노역, 폭력과 굶주림, 사망자 암매장이 자행되었던 인권 유린 시설이었습니다.

지원금을 노린 강제 납치와 가혹한 수용 생활

과거 부산시는 사회 정화 정책에 따라 18세 미만은 영화숙에, 18세 이상은 재생원에 위탁하여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시설을 운영한 이순영 원장은 수용 인원에 따라 나오는 국가 지원금을 가로채기 위해 사람들을 무차별로 납치했습니다. 시설에 끌려온 아이들은 장부상 이름까지 조작되어 부모가 찾아와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수용 시설 내부는 매우 열악했습니다. 아이들은 좁은 방에서 등을 대지 못한 채 잠을 자야 했고 밤에는 화장실조차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새벽 군대식 점호와 함께 폭행이 이어졌으며, 식사로는 묽은 강냉이죽만 나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도망치려다 붙잡히면 곡괭이 자루로 모진 매질을 당했습니다.

시설 내 폭력의 대물림과 시신 암매장

원장은 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원생들에게 완장을 채워 서로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생들 사이에서도 가혹 행위와 성폭행이 발생했습니다. 극심한 영양실조와 구타로 숨진 이들의 시신은 원생들에 의해 근처 갈대밭과 야산에 몰래 묻혔습니다.

이러한 실태는 1969년 인근 구호병원의 미국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고발하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소 신부와 시민 10만 명의 서명 운동을 거쳐 1971년에 부산시 위탁 계약이 취소되고 국가 지원금도 중단되었습니다.

범죄 도구로 전락한 아이들과 무기수의 참회

지원이 끊긴 뒤에도 원장은 아이들에게 도둑질과 마약 배달을 가르치며 시설을 범죄 수단으로 악용했습니다. 1976년 법인 허가가 취소되었지만 원장은 벌금형 처벌만 받았습니다. 시설에서 벗어난 피해자들은 이후 다른 수용 시설로 끌려가며 또다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번 방송은 36년째 복역 중인 한 무기수가 제작진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고통받았던 그는 과거 자신이 묻어야 했던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찾아 유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정리 기준과 공식 출처

자료 등록일: 2026-10-23

iMBC 공식 자료 — '꼬꼬무' 70대 무기수 "내가 암매장한 어린아이 시신들, 유족에 돌려주고파"

위 공식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로 정리했습니다. 자료에 없는 세부 내용은 단정하지 않습니다.